유령이 살아서 유령섬은 아닙니다.
나가사키에서 15km..
섬전체가 해저탄광이며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들의 노동력 착취가 있었고, 대부분 돌아오지 못하고, 우리 조선인들이 죽임을 당했던 바로 그곳..
그 한이 서렸는지 유령섬으로 불리우고 있고, 1974년까지 사람이 살았으나..
그 이후론 단 1명도 거주하지 않음..
인구밀도가 높다못해 폭발하는 일본도..여기서는 살지않겠다고 버린 땅..
일본, 하시마...
<출처 - 1차 구글어스갤/ 2차 베티 mana endless님>
하시마(端島)혹은 군함섬(軍艦島)이라고 불려지는 이 작은 섬은 일본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철근 콘크리트 주거용 4층(나중에 7층) 아파트가 있는 곳이며,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많은 석탄 생산량을 자랑하던 곳이며, 일본의 전쟁에너지를 공급한 곳이며, 1939년부터 1945년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수많은 한국 노동자들이 징용으로 끌려가 죽도록 고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무인도로 아무도 살지 않지만 사람들이 모여 살던 1910년대에는 세워진 아파트 때문에 멀리서 보면 바다에 군함이 떠 있다고 해 나가사키일일신문이 처음으로 군함섬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하시마나 군함섬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 섬은 세종대학 한 수산 교수님이 쓰신 <까마귀>라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입니다.
힘없는 나라의 힘없는 백성으로 태어나 지옥같은 하시마 탄광에 끌려와 겨우 탈출하였지만원통하게도 원폭을 맞고 목숨을 잃고 마는 조선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원자폭탄으로 형언할 수 없는 참혹한 상태가 돼 버린 나가사키..인척을 찾아 헤매며 방공호에서 조우한 사람들..누구인지 구별도 돼지 않는 검은 숯검덩이의 사람들..수많은 사람들이 그자리에서 죽어갔다..원폭으로 억울하게 죽은 망령을 위로하듯 검은 비가 계속 내린 나가사키..그 빗물을 따라 흘러내려 가는 조선인 여자 아이의 하얀 댕기..그 여자아이에 올라타 눈을 쪼아먹는 까마귀 까마귀 까마귀..살아서도 차별을 받았던 조선인..죽어서도 차별을 벗어날 수 없었던 조선인..혼이라도 조선을 향해 훨훨 날아갈 수 있다면..."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
일본인 후루키(古木)부부가 그린 <까마귀>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1945년 그 해까지 원폭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는 7만여명..그 중 사망한 조선인들은 2만명에서 1만명으로 추정합니다. 사망자의 20%가 조선인들입니다.. 나가사키의 바다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하시마가 잘 보이는 곳에 타가시마(高島)라는 섬이 있는데 일본에서 처음으로 섬에서 석탄이 발견된 곳입니다. 이곳에서도 상당히 많은 한국 사람들이 강제지용으로 노역에 종사했습니다.
역사의 사실을 은폐한 하시마를 생각하는 많은 일본인들은 옛날의 향수를 생각하며 추억에 젖지만, 한국인들이 보면 억울하고 울분이 치미는 그런 섬입니다. 지금은 나가사키항에서 섬 주위를 도는 관광선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부연설명 :
해저 탄광으로 석탄생산이 많아 한때는 세계최고의 인구밀도를 기록하기도 했고..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아파트가 세워진 곳이라지..그당시에는 본토보다 더 발달한 하이테크 도시였는데..70년 즈음에 일본의 석탄에너지 위주의 정책의 변경으로 탄광이 폐쇄되어서 거주민은 육지로 이주- 폐쇄되었다고 함..
[동아일보 2007-08-15]
日, 전쟁범죄 역사지우기 하나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돼 일본에 끌려갔던 조선인들이 묵었던 건물을 일본의 지방자치단체가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려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는 일본 나가사키(長崎) 시가 나가사키 항구 서남쪽으로 18.5km 떨어져 있는 하시마(端島) 섬의 여러 건축물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일본 내 시민단체인 '나가사키 재일(在日)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인권모임)을 통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나가사키 시는 시 홈페이지에서도 하시마 섬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1910년 만들어진 하시마 섬의 건축물은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주거용 건물로 근대화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진상규명위 측은 “나가사키 시가 조선인 강제 징용이라는 역사적 죄과를 쉬쉬하면서 무인도로 남아 있는 하시마 섬을 관광지로 개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문제의 콘크리트 건물은 4∼7층짜리 10여 동으로 하시마 섬의 해안을 따라 서 있다.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1939∼1945년 강제 징용된 조선인 500여 명은 하시마 탄광에서 일하며 일본인 노동자와 함께 이 건물에 흩어져 생활했다.
하시마 탄광은 일본 미쓰비시사가 소유했던 것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서 석탄 생산량이 가장 많은 탄광 중 하나였다. 일본의 인권모임이 하시마 탄광 사망자의 ‘매·화장 기록서’를 확인한 결과 당시 조선인 강제 징용자 122명이 이 섬에서 숨졌고, 사인은 두개골 함몰, 익사, 압사 등이었다.
하시마 탄광에 강제 징용됐던 피해자 박준구(87) 씨는 “그 섬은 높은 방파제와 거센 파도로 탈출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조선인들은 전쟁 말기 위험한 작업에 집중 투입됐으며 탄광 관리인들의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고 덧붙였다.
진상규명위 이재철 홍보담당관은 “나가사키 시가 조선인들의 한과 아픔이 서린 하시마 섬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은 일본 정부의 ‘어두운 역사 지우기’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나가사키 시의 움직임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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