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 문명

무대륙의 나칼 비문

예언 전문가 2013. 6. 8. 22:28

무대륙의 나칼 비문

 

무대륙의 발견

1864년 프랑스 신부 샤를 브라쇠르는 마드리드 왕립역사학회 도서관에서 에스파냐의 중앙아메리카 정복시대의 신부 디에고 데 린다의 <정복전후의 유카탄>을 발견하고, 그 가운데 마야 알파벳을 기반으로 고대 마야의 <트로아노 고사본>을 해독했다. 그리고 거기에 기록된 화산폭발과 재앙에 의해 함몰한 나라의 이름에 해당하는 두개의 마야 그림문자를 보고 MU라 읽었다.

 

 

 

제임스 처치워드

1926년 가을, 전세계 고고학계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 육군의 예비역 대령인 제임스 처치워드가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이라는 책에서 고고학자들도 들어 보지 못한 무 대륙의 실재를 주장한 것이다.

이 대담한 주장을 한 영국인은, 1868년부터 인도에 머무르면서 원주민들 사이에 전설로 내려오는 무 대륙에 대해 듣고 필사적으로 그 확인 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인도의 옛날 사원에서 무 대륙에 관한 사실이 적힌 옛 점토판을 발견하여 그것을 해독했다. 그 결과, 원주민들 사이에 전승된 무 대륙이 상상의 땅이 아니라 실제로 태평양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문명이 발달했던 대륙이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

아득한 옛날, 지금의 태평양이 있는 위치에 '무(Mu)'라는 광대한 대륙이 있었다. 그 동쪽 끝은 현재의 이스터 섬, 북쪽 끝은 하와이 제도, 서쪽 끝은 마리아나 제도, 그리고 남쪽 끝은 지금의 쿡 제도에 해당한다. 동서의 길이는 8천 킬로미터, 남북은 5천 킬로미터로 지금의 태평양 면적의 절반 크기다.

이 무 대륙에 인류가 나타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5만 년 전의 일이다. 이곳에 살았던 인간은 매우 우수한 민족으로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고 있었다. 무 대륙의 인구는 약 6천4백만 명이었고, 열 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머리색, 피부색, 눈의 색은 제각기 달랐지만 각 민족 간에 차별은 없었고, 한 명의 왕 밑에 하나의 정부가 통치하고 있었다. 무 제국 국민은 우수한 학문과 문화를 가졌고, 특히 건축술과 항해술이 고도로 발달해 이었다. 그들은 진취적인 기질이 풍부하여 배를 타고 세계 각처를 떠돌았다. 서쪽으로는 아시아, 유럽, 이집트와 교류했고, 동쪽으로는 북아메리카 중부에서 남아메리카 북부까지 진출하여 그곳에 자신들의 식민지를 건설했다.

 

 

나칼 비문

얼핏 들으면 신화 같은 무 대륙에 관한 처치워드의 이러한 주장은 그가 머릿속으로 상상하여 꾸며 낸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그가 이런 대담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도의 낡은 힌두교 사원에서 입수한 두 개의 점토판 덕택이었다.

두 개의 점토판에는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도형과 기호 같은 것이 빽빽이 새겨져 있었다. 늙은 고승은 점토판이 신비한 모국(母國)인 무에서 보내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가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노승은 처치워드를 토굴 속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1만여 년이라는 세월에 부식된 점토판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그 점토판들을 보자기에 소중히 싸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점토판에 새겨진 고대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데 전념했다. 해독은 군대에서의 암호 풀기와 같았다. 그는 고승의 도움을 박아 2년 동안 점토판 해석에 매달렸고, 마침내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그 점토판은 무 대륙의 성정인 '거룩한 영감의 책'이었는데, 무 대륙의 건국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점토판에 새겨진 무 대륙의 건국 설화는 구약의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설화와 비슷했다. 그는 이렇게 추측했다. 무 대륙은 왕성한 해상 활동을 했으며 인도와 이집트, 그리고 시나이 반도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모세는 우연히 이것을 입수해 석판에 다시 새겼을 것이다.

처치워드는 인도의 고사원에서 입수한 점토판을 '나칼 비문'이라 명명하고, 자심의 추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또 다른 고대 점토판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멕시코의 광물학자 윌리엄 니벤이 고대의 석판을 수천장 수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멕시코 석판이 나칼 비문보다 1만 년 후에 아메리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