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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추격자]충무로 뜨겁게 달군 ‘추격자’의 힘은 무엇?

예언 전문가 2008. 3. 1. 16:56
[영화/추격자]충무로 뜨겁게 달군 ‘추격자’의 힘은 무엇?
 

펌: http://choonggyuk.com
 

[뉴스엔 조은영 기자]

충무로 뜨겁게 달군 ‘추격자’의 힘은 무엇?
대단한 자신감이라고 느껴졌다. 영화 시작 30분만에 범인은 물론 범행과정까지 모든 정보를 관객에게 공개해 버렸다. 이후 '추격자'(제작 비단길 감독 나홍진)가 선택한 전략은 미스터리나 반전이 아니다. 범인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시스템의 원천적 결함, 그로 인해 파생되는 아이러니의 연속이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며 영화적 재미와 긴박감을 채워나갔다. 관객들은 30여시간 동안 범인을 쫓는 한 남자의 절박한 추격전을 지켜보며 범죄가 방치되는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에 분노와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추격자’는 장르 영화의 규범이 한국이란 현실공간에 펼쳐지며 파생된 기이한 에너지의 산물이다. 무엇보다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영화가 공개된 직후 언론, 평단, 관객의 반응도 이견이 없다. 2008년 첫 발견, 최고의 데뷔작, 한국 스릴러의 완성이란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 비전형적인 캐릭터

충무로 뜨겁게 달군 ‘추격자’의 힘은 무엇? ‘추격자’는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이 사이코패스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설명을 추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타인과 소통이 불가한 지영민의 거리만큼 관객과 의도적인 단절을 만들어 이해할 수 없는 순수 악으로 묘사했다. 천진한 아이와 잔혹한 악마가 공존하는 연쇄살인마라는 설정은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이같은 지영민과 관객 사이 거리두기는 일면 캐릭터를 쿨한 살인마로 만들었다. 특히 실종된 여자들의 행방을 묻는 수사관의 질문에 담담한 표정으로 "안 팔았어요…죽였어요"라고 고백하는가 하면 여형사의 피냄새에 반응하고 살인 도중에 훼방을 놓은 이웃 사람이나 심리 조사관에게 짜증을 내는 등 냉정과 격렬함을 오가는 불균질한 매력이 긴장의 피치를 더욱 강하게 끌어 올린다.

충무로 뜨겁게 달군 ‘추격자’의 힘은 무엇? 영민을 쫓는 엄중호(김윤석) 역시 비리로 옷을 벗은 전직 형사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비리에 연루돼 경찰직을 떠난 후 출장 안마소를 운영하고 있는 중호는 인생의 막장까지 내려간 인물이다. 따라서 중호에게 도덕심 혹은 정의감은 이미 메마를대로 메말라 버린 감정들이다. 그런 중호가 사유재산을 침범당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원한에서 출발해 혼란스러운 변화들을 거치며 집착에 가까울 만큼 미진을 찾기 위해 영민을 쫓는다. 차 안에서 아픈 미진에게 전화를 걸어 일을 나가라고 말한 순간부터 중호에겐 동기가 생겼다. 중호가 영민에 대해 품는 증오는 스스로 가해자의 일원이라는 자책감의 발로다. 때문에 중호는 미진에게 가해자인 동시에 거의 유일한 보호자다. 또 영화는 중호의 분노, 좌절, 아픔 등 여러 감정들이 상충하며 상황에 서서히 젖어들도록 만들지만 어떤 것도 쉽게 단정짓진 않는다. 그리고 그가 가장 흠뻑 젖은 그 순간 영화가 멈췄다. ‘추격자’의 특별함은 비전형적인 캐릭터인 중호란 인물을 통해 영화가 드러내고자 한 시각을 구체화했다는 것이다.

#. 뜨거운 추격전

‘추격자’는 ‘범인은 누구인가?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하는 영화가 아니다. ‘추격자’는 범인을 둘러싼 모든 것을 추격하는 영화다. 때문에 영화 시작 30분만에 범인은 물론 범행과정까지 모든 정보를 관객에게 공개해 버린다. 단 마지막 희생자인 미진의 숨이 가늘게 붙어있다는 전제를 남겨 둔채. 이때부터 영화는 미진을 찾기 위한 중호와 연쇄살인마 영민 사이 뜨거운 추격전이 벌어진다. 쉴틈 없이 발생하는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이야기의 밀도도 높아졌다. 특히 이들의 추격전 사이사이 시스템의 원천적 결함으로 발생되는 아이러니의 연속과 하드보일드 액션이 교차되며 관객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한다. 또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그 정보들을 찾아 범인을 쫓아야 하는 영화 속 인물들의 판단과 움직임을 주시하며 어떤 장면에선 조소와 분노를 보내고 또 어떤 장면에선 안타까움과 감동을 얻게 된다. 아울러 폭발성 높은 두 캐릭터가 만들어 내는 격렬한 에너지가 영화 속 팽팽한 긴장감을 강화한다.

#. 시스템에 대한 차가운 분노

이야기 보단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어 영화를 만들었다는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롤 통해 범죄를 방치하는 아이러니한 사회구조, 시스템의 원천적 결함에 대한 분노를 표현해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영화는 판타지가 개입될 공간을 열어두지 않은 채 과정을 객관화한 극사실주의로 흐른다.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범인이 공개됨에도 경찰의 한건주의와 검찰의 보신주의가 더해지면서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미진이 그대도 방치되는 냉혹한 현실을 반복적으로 확인시킨다. 관객들은 미진을 찾아 영민을 쫓는 중호와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반복하며 매번 용의자를 풀어주는 공권력의 무능함 사이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관객들의 모든 기대를 야멸차게 배반한 비전형적인 결말로 귀결됐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견지하는 시선은 대단히 차갑게 느껴진다. 때문에 영화를 보고난 후 관객들은 자신들 역시 이같은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안에 언제든 방치될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의 감정을 넘어 공포스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충무로 뜨겁게 달군 ‘추격자’의 힘은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