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천년의 세월이 낳은 환단고기
[환단고기] 천년의 세월이 낳은 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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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고유 사서의 소실
예로부터 전해오던 한민족의 고유 사서 대부분은 환국- 배달- 고조선의 삼성조 시대 이후 수천 년 동안 무수한 전란 속에서 화재로 소실되거나 외적에게 탈취되었다.
그리고 고려 때는 국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유가와 불가 사상에 벗어난 사서들이 대거 소각되었다.
특히 고려 중기 김부식의 대대적인 사료 수거와 소각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한민족사의 허리가 잘려나간 결정적 이유 중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다.
조선에서도 사서 소멸은 중앙 조정에 의해 계속되었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양대 전란으로 말미암아 또 다시 우리 사서가 탈취·소실되었고, 그 뒤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행한 조선사 말살 작전으로 총 51종 20여만 권의 서적이 소각 또는 인멸되었다.
환단고기는 한민족 고유 사서의 완결본
이렇게 외세 침략 혹은 우리 스스로 저지른 과오 때문에 한민족사의 참모습을 확인시켜 줄 사서들이 거의 다 사라져 버린 지금, 천우신조로『환단고기』와『단기고사(檀奇古史)』,『 규원사화(揆園史話)』,『제왕연대력(帝王年代歷)』등 몇 종의 책이 겨우 전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삼성조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근세조선을 제외한 한민족의 전 역사만 아니라 상고시대 동북아 문화권의 정치, 경제, 종교, 지리, 풍속, 언어, 음악, 건축, 국제관계 등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전하는『환단고기』는 한민족 고유 사서의 완결본이라 하겠다.
환단고기의 구성
『환단고기』는 안함로의『삼성기 상』, 원동중의『삼성기 하』, 행촌 이암의『단군세기』, 범장의『북부여기』, 일십당 이맥의『태백일사』, 이 다섯 종의 책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신라 고승(高僧) 안함로에서 조선조 이맥에 이르기까지 거의 천 년 세월에 걸쳐 다섯 사람이 저술한 사서가 하나의 책으로 묶여진 것이다.
삼성기
두 권의『삼성기』는 인류의 창세 역사와 잃어버린 한민족사의 국통 맥을 바로 세우는 데 근간이 된다.
『삼성기 상』이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라고 하여 ‘환국이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 된 나라’임을 선언한 것을,『삼성기 하』는 “석유환국(昔有桓國)” 이라 하여 ‘옛 적에 환국이 있었다’는 말로써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다.
『삼성기 상』은 동북아에 세운 한민족 첫 왕조의 국호가 배달이었음을 처음으로 밝혔으며,『삼성기 하』는 환국의 열두 나라 이름과 배달의 18대 환웅천황의 계보를 모두 전하고 있다.
『삼성기 하』는 또한 현 인류의 시조인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이 두 권은 깍지 낀 두 손처럼 서로 음양 짝을 이루어 인류와 한민족의 시원사를 드러내 준다.
단군세기
『단군세기』는 고조선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의 성쇠와 함께 한 고조선 47대 단군의 2,100년 역사를 연대기 형식으로 기록한 사서이다.
『삼성기』,『단군세기』,『태백일사』에서 일관되게 전하는 삼한관경제의 관점에서 고조선사를 들여다볼 때, 고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
북부여기
『북부여기』는 유일하게 부여사의 전모를 밝혀 주는 진귀한 책이다.
기존의 국내외 사서에서 말한 부여사라는 것은 부여 역사의 주체이던 북부여가 망한 후 그 유민들이 세운 ‘망명 부여’들의 단편적인 사실을 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북부여기』에는 북부여의 건국 시조인 해모수의 실체가 처음으로 밝혀져 있다. 고주몽이 북부여의 마지막 단군 고무서의 사위가 되어 대통을 이은 후 고구려를 열었음을 밝혀 주는 이 책 덕분에, 비로소 고조선과 고구려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인 부여 역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태백일사
『태백일사』는 8권으로 짜여진 사서로, 인류의 원형문화인 신교를 기반으로 전개되어 온 환국에서 고려까지의 역사를 전한다.
그 첫머리에「삼신오제본기」가 나오는 이유는 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이 한민족의 상고사를 이해하는데 중심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삼신오제본기」는 삼성조 시대의 정치, 종교, 건축, 의식주 문화 등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되는 역사 철학서인 것이다.
『태백일사』는 또한『삼성기』와『단군세기』에서 전하지 못한 환국, 배달, 고조선의 소상한 역사를 전하고 있다.
『환단고기』각권의 내용
『삼성기』- 안함로의 『삼성기 상』과 원동중의 『삼성기 하』가 음양 짝을 이뤄 한민족의 국통 맥을 바로 세우고, 한(韓)문화의 원형이 '환(桓) : 인간 마음의 본성이자 현 인류의 시원 국가인 환국)' 이었음을 밝혀준다.
특히 『삼성기 하』는 12환국의 이름과 배달의 18대 환웅천황의 계보를 모두 기록하고 있다.
두 권을 함께 읽어야 한민족 상고사의 특이 확연히 드러난다.
『단군세기』- 고려 말에 행촌 이암이 엮은 역사책으로 총 2,096년 47대 단군의 치적과 중요한 사건을 편년체로 기록하였다.
특히 고조선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를 밝혀, 한국의 간단사학계에서 해석하지 못한 고조선의 정치와 외교에 얽힌 의혹, 고조선 문화의 실체 등을 총체적으로 해명해 준다.
『북부여기』- 고려 말에 범장이 쓴 책으로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6대 단군 182년의 역사와 북부여에서 파생한 다른 부여의 역사를 전한다.
부여 역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사서이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출생과 혼인에 대한 비밀을 밝혀, 북부여가 고구려로 계승되었음을 밝힌다.
『태백일사』- 조선 중종 때 이맥이 쓴 8권의 책으로 환국에서 고려까지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첫머리에 해당하는「삼신오제본기」는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과 이를 기반으로 성립된 음양오행 사상을 전하는 역사 철학서로 신교문화이 기틀을 밝힌다.
「환국본기」,「신시본기」,「삼한관경본기」는 『삼성기』, 『단군세기』에서 전하지 못한 환국- 배달- 고조선의 7천 년역사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소도경전본훈」은 신교의 경전 성립사를 기록한 책으로 한민족 시원문화의 3대 경전(『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참전계경(參佺戒經)』)을 기록하여 한민족의 우주관, 신관, 인성론과 수행문화의 원형을 밝혀준다.
「고구려국본기」,「대진국본기」,「고려국본기」는 각각 고구려, 대진국(발해), 고려의 역사를 주체적인 시각에서 기록하였다.
『환단고기』의 편찬과 대중화
계연수 선생의 환단고기 편찬
『환단고기』는 1864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난 운초 계연수(1864~1920)가, 지인들로부터 구한 한민족의 정통 사서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안함로의 『삼성기』는 그의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것이고, 원동중의 『삼성기』는 인근의 태천에 살던 백관묵에게서 구하였다.
『단군세기』또한 백관묵의 소장본이고, 『북부여기』는 삭주 사람 이형식의 소장본이었다.
『태백일사』는 그의 스승이자 항일운동 동지인 해학 이기의 집안에서 전해오던 것이었다.
계연수는 원래 우리 옛 역사와 민족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여러 양반가와 사찰을 돌아다니며 비장 서책과 금석문, 암각문등 옛 사료를 많이 수집하였다.
약초를 캐어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뿐 오로지 역사 밝히기에 골몰하다가 1897년 이기의 문하에 들어간 이후 여러 권의 역사서를 발간하였다.
이기는 정약용의 학통을 계승한 실학자로서 당대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또한 『단군세기』를 쓴 이암과 『태백일사』를 쓴 이맥의 직계 후손으로 우리의 고대사에도 해박하였다.
이기의 지도아래 계연수가 발간한 역사서의 결정판이 바로『환단고기』이다.
1911년 계연수는, 그의 벗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홍범도와 오동진 두 사람의 자금 지원으로 만주 관전현에서 『환단고기』30부를 간행하였다.
이로써, 9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외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동방 한민족이 절망과 통탄의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때, 민족의 국통 맥을 천지에 선포하는 위대한 사서가 출간된 것이다.
계연수 선생의 죽음을 지켜본 이유립 선생
운초는 항일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천마산대, 서로군정서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57세 때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런데 당시 압록강에 처참하게 버려진 그의 시신이 수습되는 광경을 지켜본 한 소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훗날 『환단고기』를 널리 대중화시킨 이유립 (1907~ 1986)이다.
이암과 이맥의 후손인 그는 평안도 삭주의 유지이자 독립운동가이던 이관집(李觀楫)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유립은 계연수와 친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13세 때(1919) 단학회가 주관하는 교육기관인 배달의숙(倍達義塾)에 들어가 계연수, 이덕수 두 스승의 강의를 들으며『환단고기』를 공부하였다.
그 후 독립군의 통신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14세), 신간회의 삭주 지부를 결성하는(21세)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단학회 기관지『태극』을 발행, 그 주간(主幹)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에, 계연수 사후 그에게 전수된『환단고기』를 가지고 월남하였다.
이후 단학회(檀學會)를 단단학회(檀檀學會)로 개칭하였고, 1963년 대전에 정착한 이후에는 후학을 기르며 역사연구와 강연에 전념하였다.
환단고기 출간의 우여곡절
한문과 역사에 해박한 이유립에게 여러 사람이 배움을 청하였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오형기(吳炯基)였다.
오형기는 한국 고대사의 실상을 알고자 하는 구도자적인 의지를 가지고『환단고기』공부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1949년 이유립에게『환단고기』를 빌려가 필사한 후 발문(跋文)을 써 붙였다. 그러나 책을 지은 사람이 쓰는 것이 상례인 발문을 오형기가 임의로 쓴 것에 대해 이유립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고 한다.
이 필사본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이유립의 문하생 조병윤이 1979년에 서울의 광오이해사(光吾理解社)에서 이 필사본을 영인하여 100부를 출판한 것이다.
이른바 ‘광오이해사본’ 『환단고기』가 이유립의 허락도 없이 시중에 배포되었다.
이에 사태 수습 차원에서 이유립의 단단학회는 문제의 발문을 삭제하고 오자를 바로잡은 새로운 필사본을 만들었다.
원고는 1979년 그해에 완료되었으나, 출판비가 없어 1983년에야 배달의숙을 발행인으로 하여 100부 발간하였다.
일본인의 환단고기 왜곡
그 무렵 『환단고기』가 일본어로 번역· 출판되는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광오이해사본을 입수하여 검토한 일본인 변호사 가지마 노보루(鹿島昇)가 『환단고기』를 일본 천황가의 뿌리를 밝혀 줄 수 있는 책이라 여긴 것이 발단이었다.
가지마는 ‘『환단고기』는 아시아의 지보(至寶)’라 극찬하고 자국의 정계와 재계의 후원을 끌어내어 1982년 ‘실크로드 흥망사’ 라는 부제를 붙인 일본어판『환단고기』를 출간하였다.
하지만 이 일본어판은 환국 → 배달 → 고조선 → 고구려 → 대진국(발해) → 고려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를 배달 → 야마토 일본 → 나라일본 → 헤이안시대로 이어지는 일본 역사로 둔갑시켜 놓았다.
동방 한민족의 역사가 중동 유대족의 역사에서 발원하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하였다.
뒤이은 환단고기 번역본의 출간
당시 국내에서는 이유립과 임승국이 우리 고대사를 월간지『자유』에 수년 동안 연재해 오던 터라, 한민족의 상고 역사와 신교 문화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인이 쓴『환단고기』가 한국에 역수입되어 소개되자, 한국 역사학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1985년 당시 고등학교 교사이던 김은수가 첫 번역서를 낸 이후 오늘날까지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환단고기』번역본이 출판되고 있다.
잃어버린 한민족의 시원 역사와 문화를 복구하려다가 일제의 역사 도륙의 칼날에 무참히 죽어간 계연수와 그의 스승 이기,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역사 연구에 헌신하며『환단고기』를 널리 알린 이유립! 이들은 모두 ‘한민족 사학의 아버지’라 불러 마땅하다 하겠다.
* 자세한 내용은 『환단고기(상생출판)』 참고
* 출처: 환단고기(http://hwan.jsd.or.kr)
(상생출판 환단고기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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