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미스테리

해적선에는 왜 애꾸가 많을까?

예언 전문가 2013. 5. 17. 09:16

해적선에는 왜 애꾸가 많을까?

밝고 어두운 곳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

 

 

 

‘애꾸눈’하면 우리는 주로 어릴 적 읽었던 ‘보물섬’ 속의 해적선 선장 잭을 떠올린다. 그러면 잭은 안대를 오른쪽 눈에 착용했을까? 아니면 왼쪽 눈에 착용했을까? 번갈아 착용한 것은 아닐까?

영국의 작가 스티븐슨이 1883년 출간한 보물섬은 의붓아들 오즈번이 가공(架空)으로 그린 섬 그림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그의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든 불후의 작품이다.

▲ 해적선에는 애꾸눈이 유독 많다. 그러나 그들이 안대를 한 것은 빛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fileMorgue free photo
처음에 연재될 때에는 별로 인기가 없었으나 단행본으로 출판되자 성인 독자들로부터 커다란 호평을 받아 작가의 출세작이 되었다. 이 작품이 아동문학의 고전으로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까닭은 줄거리가 흥미 있고, 뛰어난 성격묘사와 실감나는 묘사로 엮어나간 점에 있다.

해적들을 보면 안대를 찬 애꾸눈이 많다. 아마 직업상(?) 전투를 많이 해야 하니 칼 싸움을 하다가 다쳤다고 믿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특히 화살을 맞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실 해적들은 안대를 찬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왜 차고 있을까?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칼 싸움에서 다친 상처 때문은 결코 아니다. 아마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칼 싸움으로 다쳤다면 90% 이상이 회복되지 못하고 사망했을 것이다. 해적선의 의료수준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해적들은 급박한 상황에 처하기가 일쑤다. 적들과 자주 마주쳐야 한다. 그리고 전쟁을 벌여야 한다. 상대가 수탈 대상이 되는 상선이든, 아니면 서로 묻고 뜯어야 하는 같은 해적선이든 간에 말이다.

미국 오레곤의 퍼시픽 대학 시각기능연구소(vision Performance Institute)의 짐 시디(Jim Sheedy) 소장은 해적들이 애꾸가 많은 것은 과학적으로 볼 때 상당히 타당성이 있고 납득할 만한 내용이라고 지적한다.

시디 소장은 “해적들은 갑자기 전투가 벌어지면 어두운 갑판 밑과 밝은 갑판 위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쪽 눈을 어둠에 적응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안대를 찼다”고 주장한다.

어둠 속에서 눈이 적응하는 데 25분 걸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안대를 차는 애꾸눈 해적들은 그렇지 않은 해적들보다 더 똑똑한 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빛이라는 주변 환경에 적응을 잘한 해적들이기 때문이다.

전투가 벌어져서 갑판 밑으로 내려가야 할 경우 안대를 찬 해적은 안대를 올리고 곧바로 어둠에 적응할 수 있다. 깜깜한 장소에 완전한 적응하는 데 걸리는 25분을 절약하고 곧장 전투에 뛰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전투에서 25분은 아주 긴 시간이다.

따라서 해적들은 옛날부터 안대를 많이 찼다. 그러나 훗날 우리들은 동화나, 그림, 그리고 소설과 영화 등을 보면서 해적들이 싸움을 많이 하다가 다쳐 한쪽 눈을 잃은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중 일부는 다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빛과 눈이라는 명암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보물섬’의 해적선 선장 잭은 상당히 지혜로운 선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는다 해서 눈 멀지 않아

우린 이런 생각에 익숙해져 있다.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으면 눈이 먼다는 이야기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일까? 하긴 시신경의 피로도가 높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시디 소장은 눈이 먼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두운 곳에서 독서하는 행동이 눈에 장기적 손상이나 변화를 초래한다는 생리학적 증거가 없으며 그렇게 믿을만한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불편하거나 피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빛이 부족할 경우 동공이 확장되면서 눈이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피사체와 가장 먼 피사체 간 거리인 심도가 축소된다.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을 때는 눈 사이 시선 각도 및 초점을 조절하기 위한 노력이 더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눈과 신체피로를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시디 소장은 전했다. 물론 바로 이것을 노리고 잠자리에서 독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피로가 와 잠을 쉽게 청할 수 있다.

시디 소장은 특정 행동이 근시(近視)로 이어진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그는 “근시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유전이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어두운 곳에서 독서하는 행위와 장기적 시력손상 간 관계가 확정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며 “아이들을 재우려고 어머니들이 하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화면 시력 해친다고 할 수 없어

▲ 짐 시디 퍼시픽 대학 교수  ⓒ퍼시픽 대학
시디 소장은 태블릿에서 독서하는 행동이 시력을 해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각기능연구소 연구진은 픽셀(pixel) 밀도와 화면해상도, 다양한 글자체를 연구한 끝에 디지털기기로 독서하는 것과 인쇄활자를 읽는 것 간의 차이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결론지었다.

픽셀 밀도와 화면해상도가 눈이 인식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는 게 괜찮다면 킨들이나 아이패드도 마찬가지라고 시디 소장은 덧붙였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갈 때 눈은 빛에 신속히 적응하지만 그 반대일 때는 “광색소 재생이 필요하기 때문에 완전히 적응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

잠자리 옆 어스름한 조명에 적응하는 데는 몇 초밖에 걸리지 않지만, 밝은 곳에서 완전히 어두운 곳으로 갈 때는 눈의 감광도가 최대 25분까지 계속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이것이 해적들 가운데 애꾸눈이 많은 이유다. 따라서 해적선 선장 잭은 계속 한쪽 눈에만 안대를 찬 것이 아니라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면서 찼을 것으로 보인다. 한쪽에만 차는 것보다 번갈아 차는 것이 눈을 훈련시켜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가 빠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빛의 강도와 눈과의 조율이 중요해

빛과 관련해 우리에게 익숙한 고사성어가 있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말이다. 너무 가난해서 등불을 켤 기름이 없어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이다. 가난을 이겨내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이 고사성어가 뜻하는 것은 반딧불과 눈빛에 있지 않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용기를 잃지 매진한다면 그에 대한 대가가 반드시 온다는 권학(勸學)을 위해 만든 고사성어다. 그러나 옛 사람들은 빛과 눈을 잘 조율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다. 미국도 청소년의 약 30% 이상이 근시로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고 한다. 시드 소장의 이야기처럼 특정행동이 근시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며 인터넷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렇지도 않다.

빛과 눈을 적당히 조율하는 것이 눈을 지키는 일이다. 해적선의 애꾸눈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다. 이제까지 남을 죽이고 지나가는 배를 공격해 노략질하는 나쁜 사람들로 알고 있었던 그 해적들이 말이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